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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90회 다시보기

방 송 제 목 : 역사저널 그날 190회

방 송 정 보 : KBS1 시사교양

방 송 시 간 : 일 오후 9시 30분에 방송

 

 

☞ 역사저널 그날 190회 다시보기 ☜

“난병들이 궐을 범하였다” -고종실록, 고종 19년 음력 6월

13개월간 임금을 받지 못했던 조선군. 그들은 1년 2개월 만에 겨우 한 달 치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쌀가마니는 모래가 잔뜩 섞인 부실한 쌀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급료에 폭발한 군인들은 고종이 있는 창덕궁에 난입한다. 반란군은 먼저 선혜청 당상 민겸호를 죽이고, 중전 민씨인 ‘명성황후’를 찾는데... 조선 최초, 조선 군인이 궁궐을 공격한 사건, 임오군란! 반란군이 중전 민씨를 잡으러 간 이유는 무엇인가.

▶ 개화에 반발한 거대한 움직임

임오군란의 원인은 임금체불만이 아니었다? 급료가 밀린 군인들뿐만 아니라 도시 하층민도 가담했던 임오군란. 반란에 합세한 규모만 해도 당시 한성인구의 5%! 많은 백성들이 궁궐에 들이닥친 이유는 민씨 일가의 부정부패와 개화정책 때문이었다. 1973년, 고종은 정권을 잡고 개화정책을 추진한다. 명성황후의 외척인 민씨 일가는 개화정책추진기구의 요직을 차지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는다. 게다가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신식군대 별기군을 설치하면서 기존 군인들은 구조조정까지 당한다. 개화정책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면서 국가 재정도 위기를 맞는다. 당시 쌀값 폭등과 흉작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백성들. 이들은 결국 개화정책을 주도한 민씨 일가에게 불만을 품고 임오군란을 일으키는데... 백성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고종과 민씨 일가가 개화를 추진한 까닭을 살펴본다.

▶ ‘조선책략’을 둘러싼 동상이몽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 김홍집이 고종에게 바친 <조선책략>.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이 쓴 책 한 권으로부터 조선의 개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조선책략>의 주요 내용은, 조선이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연결하며,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 이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외교전략이었다. 조선책략이 전해진 이후, 조선은 미국과 연대하는 차원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그런데 정작 수교 과정에서 조선은 빠진다. 조선이 제외된 채 청나라와 미국이 추진하려 했던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선을 청나라의 속방으로 규정하는 조항이 들어갈 뻔했다는데! 조선책략을 만들고, 조선을 대신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려고 한 청나라의 진짜 속내를 알아본다.

▶ 물거품이 된 올드보이의 귀환

임오군란 당시 궁궐에 들어온 건 반란군뿐만이 아니다? 군인들과 함께 등장한 이는 한때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 그는 정계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다시 권력의 정점에 선다. 흥선대원군이 돌아온 날, 반란군이 쫓던 중전 민씨는 실종되고... 흥선대원군은 중전 민씨의 시신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바로 국상을 선포한다. 죽음을 공표하여 그녀를 정치적으로 매장한 것. 흥선대원군과 중전 민씨.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균열을 불러온 사건은 무엇일까.

돌아온 올드보이, 흥선대원군의 세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권을 잡은 지 33일 만에 청나라군에 의해 납치된 것. 임오군란의 주동자라는 의혹으로 흥선대원군은 결국 청나라에 3년간 유폐되는데... 이례적인 조선 왕족 납치사건! 청나라가 흥선대원군을 납치한 이유는?

조선을 발칵 뒤집은 조선 군인들의 반란, 임오군란의 전말은 10월 7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임오년의 쿠데타, 중전 민씨를 잡아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저널 그날 진행자 &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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